도서관의 말들

🔖 나는 주중에는 매일 리슐리외가에 있는 국립 도서관에 가서, 거기서 수많은 다른 정신노동자들과의 말없는 연대감 속에서 대부분 저녁때까지 내 자리에 앉아 있었고, 내가 찾아낸 책들의 작게 인쇄된 주석에 빠져 있었으며, 내가 이 노트들에서 언급한 책이나 그 책의 해설에 몰두해 현실에 대한 학문적 기술로부터 점점 후퇴하면서 아주 기이한 세부적인 것까지 가지를 치며 뻗어나가 곧 조망이 불가능해진 나의 기록물을 적어 가는 데 점점 빠져 들었지요. — W. G. 제발트, <아우스터리츠>


🔖 2014년부터 시작된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는 백 년 동안 매년 한 명의 작가가 미공개 작품을 노르웨이의 오슬로 공공 도서관에 보내면 백 년 뒤인 2114년에 출판하는 공공 예술 사업이다. 작품은 백 년 동안 봉인된 채 보관되고, 책 출간에 쓰이는 종이는 오슬로의 숲에 백 년 동안 심은 나무 천 그루를 이용해 만든다고 한다.

마침내 첫 문장을 쓰는 순간, 나는 백 년 뒤의 세계를 믿어야 한다. 거기 아직 내가 쓴 것을 읽을 인간들이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. — 한강, <미래 도서관, 백 년 동안 긴 기도에 가까운 어떤 것>


🔖 “독서와 산책, 빈둥거리기와 내가 사색이라고 부르는 낮잠은 최고의 행복이지.” 비블리오 샤는 종종 이렇게 단언하곤 했지만, 도서관 고양이는 그것이 흄을 인용한 것임을 알고 있었고, 그래서 사촌은 번지르르하고 속임수 잘 쓰는 표절자라고 여겼다. — 알렉스 하워드, <책 읽는 고양이>


🔖 나는 아직도 개인의 내면 세계가 책의 유무형의 세계와 깊숙이 그리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얽혀 있다는 것이 명료해진 날을, 그 시간과 공간을 뚜렷이 기억한다. — 슈테판 츠바이크, <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>


🔖 특별한 목적 없이 도서관에 드나들었던 서른 안팎의 나날을 나는 내 인생의 암흑기라고 생각했다. 취업과 전혀 상관없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놀렸다. 또래 친구들이 한창 직장에 다니며 각자의 능력을 키워 나가고 있을 때 나는 천분의 일쯤 되는 확률의 등단을 막연히 꿈꾸며 아무도 읽어 주지 않을 소설을 썼다. 매일 도서관에 갔지만 그 이유로 내 가족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걱정했다.

그런 내게 도서관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었다. 인격을 갖춘 대상이었다. 따뜻하거나 시원한 실내 온도는 도서관의 체온이었고,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속 좋은 문장은 도서관의 말이었다. 그럴 때마다 도서관은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받아 주었다. 도서관은 내 감정을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. 그러기 전에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었다. 한 몸에서 ‘느끼는 사람’과 ’쓰는 사람’을 구분하게 해주었고 이미 그런 경험을 했던 다른 많은 이의 글을 내게 보여주었다.

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도서관이 좋으니 거기 가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. 세상에는 도서관보다 더 좋은 곳이 많을 테니까. 도서관에 모든 게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.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뿐더러 온종일 찾아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때가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다. 나는 그저 암흑의 한가운데를 비행 중인 사람에게 언제부터 시작했는지,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를 그 여행을 위한 임시 정차 구역이 있다는 것만 알려 주고 싶다. 거기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무언가가 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고.